“(3차 회의에서) 협약 초안을 토대로 협상이 시작되길 바랐으나 더 많은 논의로 수정 초안이 탄생했다. 안타깝게도, ‘초안의 초안’으로 부르는 국가가 있을 정도로 첫 초안보다 질이 낮아졌다.”
‘플라스틱 국제협약의 전망과 과제’ 포럼(이하 포럼)에서 기조 발제자로 나선 이세미 브레이크프리프롬플라스틱(BFFP) 글로벌 정책고문은 INC-3 결과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습니다. 지난 9일 서울 용산구에서 열린 포럼은 국내외 15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플라스틱 문제를 뿌리뽑는 연대(플뿌리연대)’ 주최로 개최됐습니다.
플라스틱 국제협약 초안이 공개된 것은 작년 9월입니다. 같은해 11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INC-3에서 각국은 초안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습니다.
이 정책고문이 말한 플라스틱 국제협약 ‘수정 초안(Revised Zero Draft)’은 INC-3 종료 40여일 뒤인 작년 12월 28일 공개됐습니다. INC 사무국이 INC-3에서 나온 논의를 반영한 결과입니다.
그리니엄 확인한 결과, 각국이 제시한 선택지가 다수 포함됨에 따라 수정안은 69장에 달했습니다. 부속서는 제외한 분량입니다. 같은해 9월 사무국이 제시한 첫 초안이 부속서 포함 31장 분량이었던 것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것입니다.
플라스틱 오염 종식이란 목표에는 공감대가 형성됐으나, 협약 세부 내용에 대해선 국가별 이견이 적지 않습니다.
예컨대 유럽연합(EU)·영국·캐나다 등은 플라스틱 생산부터 적극적으로 감축하자는 입장입니다. 반면, 중국·미국·일본 등은 플라스틱 폐기물 재활용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러시아·이란·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들은 플라스틱 오염 종식이 아닌 단계적 감축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입장일까요? 전반적으로 한국이 ‘입장이 명확하지 않다’는 평가가 우세합니다.
최재연 한국환경산업기술원 국제환경협력센터 선임연구원은 포럼에서 “(플라스틱 국제협약 협상에서) 한국의 입장이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며 “우리나라는 석유화학 강국인 동시에 플라스틱 다소비, 다수출국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플라스틱 국제협약 도입 시 플라스틱 산업 내 노동자와 산업계 모두를 보호하기 위한 정의로운 전환 대책이 필요하단 뜻입니다.
한국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플라스틱 산업 내 인력 규모는 약 19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플라스틱 관련 제조업체는 2만여개이며, 이중 99%가 중소기업입니다.
플라스틱 국제협약 논의를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해양플라스틱과 미세플라스틱에 주목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옵니다.
이유나 동아시아바다공동체 오션 국제협력팀장은 “플라스틱 국제협약 결의문에서 특별히 해양 환경이 강조된 이유는 해양 플라스틱이 출발점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합니다.
달리 말하면 해당 주제가 구속력 있는 국제협약을 통과시키기에 매우 정치적으로 유리한 주제란 것이 그의 말입니다. 국경을 넘는 전 지구적 문제로서 국제 논의에서 다루어야 할, 다루기 좋은 의제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현재의 플라스틱 국제협약 논의에서 드러나듯, 본질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전(全)주기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습니다. 해양플라스틱의 80%가량이 육상에서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또 염분이 묻은 해양플라스틱은 재활용이 어렵기 때문에 생산 감축의 강력한 근거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팀장은 합의의 기반이 된 해양플라스틱과 미세플라스틱을 ‘송곳’으로 삼아 “인류세 전반에 걸친 생활사 전체를 뒤바꿀 전환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